[노크]리뷰/하일호

두드려라! 그러면 연주될 것이니 

< 산울림에서, 울리는, 몸의 음악에 공명하기 >

하일호(연출가, 종이로만든배)

<노크>

녹녹(knock! knock!)
(잠시 사이) 문이 열린다.

당신은 맨 처음 둥근 동굴 같은 타원형 무대를 마주한다. 
이제 잠시 후 당신은 새의 노래 가득한 숲을 지나, 춤추는 손을 잡고, 구름발로 달려, 나비처럼 날아, 손뼉 치며, 극장의 모두 사람들과 함께 두드린다. hey! everybodypercussion! 그러면 열릴 것이다, 오랜 시간 잠겨있던 우리 맘 녹슨 서랍들이, 하나, 그 속에서, 둘, 들리는, 셋, 아련한, 넷, 자장가,,, 스르르 들리는,,, 그 총총한 별 밤의 소리는, 우리를 데려간다, 파도 소리 가득한 오후의 해변으로. 

파도 소리 한동안 가득하다.

어둠이 내린다. 소리도 사라진다.



<바디퍼커션>

12월 초 공연의 잔향이, 아직 내 마음속에 진동하고 있다. 내 손이 공명하여 내 몸을 다시 쳐본다! 둠치, 둠둠차, 다다다다, 둠치둠둠차다다다다, 자 다 같이~ 에브리바디퍼커션! 락앤롤~!

바디퍼커션그룹 녹녹은 어리, 하루, 쭈야, 신, 카펠라 다섯 사람으로 구성된 바디퍼커션그룹이다. 이번 12월 2일, 3일 양일간 펼쳐진 산울림 소극장공연에서 총 8곡의 레퍼토리를 선보였다. 녹녹은 바디퍼커션에 대해서 ‘몸을 두드려서 연주하는’ 퍼커션 연주라고 설명한다. 이날의 공연에서는 목소리 그리고 바이올린, 리코더, 아코디언 등 악기와 함께하는 레퍼토리도 있었지만, 물론 몸을 두드려서 연주하는 레퍼토리들이 공연의 중심에 있었다. 그것도 관객과 “함께” 두드리는 연주의 순간들이 핵심이 아니었을까. 

관객과 “함께” 자신의 몸을 두드려서 만드는 리듬의 축제! 

몸을 두드린다는 것은 몸을 타격하여, 진동시키는 것이다. 진동은 공명을 일으킨다. 내 옆의 타인의 몸으로 공명한다. 나를 둘러싼 환경 속으로 공명한다. 그리고 나에게로 다시 돌아와 다시 내 몸을 울린다. 그러므로 바디퍼커션은 “몸을 두드려서 ‘함께’ 공명을 일으키는” 퍼커션 연주라고 할 만하겠다.

그날 관객과 “함께” 몸을 두드리고, 공명의 순간을 “같이” 경험한 <에브리바디퍼커션>과 <오후의 해변> 레퍼토리가 가장 기억에 남는다.

<나, 땅, 하늘 그리고 타인과 공명하는 리듬>

생전 처음 몸을 본격적으로 내 몸을 두드려 보면서, 자신의 몸을 두드리는 사람들을 보면서 생각했다. “럴수 럴수 이럴수가 신체 부위마다 다 다른 소리가 나잖아! 잉? 내 몸에서 이런 소리가 나는구먼!” 

인간은 더 높은 소리를 내기 위해서, 더 낮은 소리를 내기 위해서, 마음속 언어를 더 멀리 보내기 위해서, 더 많은 사람에게 들릴 수 있도록, 그래서 저 하늘 위 신에게까지 들릴 수 있도록, 악기라는 걸 발명했다. 바흐는 그 악기들을 사용해서 푸가를 만들었고, 비발디는 사계절을 노래했고, 모차르트는 기쁨을 작곡했다.
바디퍼커션은 악기가 아니라 자신의 몸을 두드려서 연주한다. 누구나 몸을 갖고 있다. 그러므로 (C코드만 칠 수 있으면 할 수 있는) 펑크 락이고, (노동 계급 음악이었던) 초기 락앤롤이다. 누구나 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태생적으로 가난하다. 그래서 인간적이다. 내 몸의 구석구석을 두드리고, 치고, 비비고, 문지르고, 긁어서 만드는 리듬은 인간 그 자체에서 들리는 가난한 음악이다. 뼈와 살과 영혼으로 이뤄진 본질의 리듬이다. 
그리고 또한 바디퍼커션은 인간과 땅이 만나는 음악이다. 자신의 발과 손으로 혹은 온몸으로 땅을 구르고, 치고, 아울러 접선한다. 장소에 따라서 흙의 소리가, 아스팔트의 소리가, 나무의 소리가, 시멘트의 소리가, 고무의 소리가 진동한다. 그 땅의 진동은 인간의 몸으로 조율한다. 더 나아가 마침내 하늘로 날아오르는 음악이다. 입을 둥그렇게 모아 손으로 타격해 입안의 공기를 진동하게 하는 방식으로 하늘을 내 몸 안으로 가져온다. 보이지 않는 하늘을 인간의 육체에 담아내 음을 만들어 내고, 리듬을 만든다. 
그 리듬이, 그 음악이 어느덧 매 순간 타인의 몸과 연결되면서 진동한다. 각자 다른 박자로, 다른 신체 부위를 사용해서 하모니를 이루다가, 옆 연주자의 몸을 치거나, 관객들과 공기로 연결하듯 공명하며 함께 관계를 맺는다. 그 공명의 방식은 하나의 커다란 연결고리를 만들어서 무한의 리듬으로 확장하게 된다. 반복되는 같은 리듬이지만 다른 톤과 질감을 가지는 음악으로 다시 태어난다. 이 점이 매우 흥미로웠다.
그러므로 나에게, <녹녹의 바디퍼커션>은 “나”라는 육체와 영혼이 땅과 하늘 그 사이에서 타인과 만나 공명하는 가난한 리듬이고, 연대의 음악으로 들린다.

<놀이>

“그림자” 레파토리를 비롯해서 곡과 곡 사이 브릿지 시간에 진행한 관객과 함께 하는 바디퍼커션 시간은 놀이 같았다. 녹녹의 멤버들은 관객 스스로 말문을 열게 만드는 일종의 영매가 되었다. 다섯 영매와 함께 하는 바디퍼커션 “놀이”는 관객을 녹녹과 함께 하는 동료 연주자로 다가가게 해주었다. 산울림 극장을 옆 관객과 함께하는 놀이터로 만들어 주었다. 그래서 현재의 내 몸을 현존하게 하였다, 옆 사람과 극장이라는 공동체를 경험하게 하였다.

<뮤직 + 퍼포먼스> 

바디퍼커션 그룹 녹녹의 <노크> 공연은 크게 두 가지가 함께 하는 공연 같았다. 하나는 바디 뮤직이고 또 다른 하나는 바디 퍼포먼스이다. 말하자면 음악과 퍼포먼스가 함께 하는 공연예술 스타일인데, 그 둘이 나뉘어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로 잘 통합되어있다. 자신의 몸으로 연주하며 소리를 내는 콘서트 방식이면서, 몸을 움직여 추상화하는 퍼포먼스 형식이다. 자신이나 타인의 몸을 치는 녹녹의 움직임은 춤과 같았다. 그 춤은 일상의 정서를 떠올리게 했고, 인간의 정서적 기억들을 꿈꾸게 하였다. 몸을 움직여 만들어 낸 리듬은 일상의 정서를 담아낸 음악으로 추상한다. 음악과 퍼포먼스가 동시에 작동하여 관객들에게 다가가는 공연형식이 녹녹 <노크> 공연의 내적 플롯이다.

<바디퍼커션그룹 녹녹>

이렇듯 녹녹의 이번 바디퍼커션 공연에서는 주로 일상생활의 리듬을 적극적으로 선취했다. 인간이 평소에 하는 일상의 행동들을 소재로 녹녹만의 리듬으로 창조한 것이다. 노래할 때 치는 손뼉, 춤을 출 때 내딛는 발 구름, 간지러울 때 하는 긁음, 심심할 때 내는 휘파람, 그 일상의 행동들로 박자를 만들어 내고 그것을 변형하여 리듬을 창조한다. 우리 삶의 일상들이 담긴 그 몸의 리듬들은 한편의 추상이다. 그 일상의 기억들이 쌓이고 쌓여서 특별한 음악이 된다. 
녹녹은 자연의 리듬(숲, 바다, 나비 등)을 가져와 추상화하였다. 그리고 인간의 정서가 녹아들어 있는 삶의 순간(자장가, 별 밤, 오후)을 추상화하였다. 그것은 나 자신 즉 인간의 몸으로 어떤 정서의 순간, 삶의 조각들을 자연의 아름다움 속에, 리듬으로 포착하려는, 음악으로 기억하려는 시도로 보인다. 한편의 바디추상음악이라고 할까. 
개인적으로 사심을 드러내자면 녹녹의 리듬과 음악이 이야기를 만나기를 바란다. 구체적인 상황을 바탕으로 하는 서사와 만나는 녹녹의 바디퍼커션은 또 어떤 모습을, 어떤 다른 무대를 보여줄지 기대되기 때문이다. 
하여 바디퍼커션그룹 녹녹이 일상의 순간이나, 인간의 감정을 담아내는 추상의 작업으로 더 깊어질지, 역사와 서사를 담보하는 구체로 상승할지, 그들의 발걸음이 궁금하다. 

공연장에서 두 곡이 담긴 녹녹의 싱글 음반을 구할 수 있었다. 싱글 음반을 들으면서, 산울림 공연을 재음미하였다. 뒤늦은 감상기를 올린다. 향후 녹녹의 정규음반 발매를 기다리겠다.


유난히 추운 2022년 12월 말, 새벽 광명에서 종이로 만든 배 연출 하일호 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