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크]리뷰/농담

<노크>에 대한 단상 

농담(더튠 보컬)

그저 단상이다. 
그녀들을 오랫동안 알아 왔지만 잘 모르겠고 
녹녹을 알고는 있지만 정말 잘 몰라서 
그저 단상에 그칠 수밖에 없음을 명확히 해 둔다. 
고로 짧다. 


1. 앨리스를 보았다
22년 12월 초 홍대 산울림 소극장. 
녹녹의 공연을 보러 온 어린 사람들과 다양한 연령대의 어른들로 북적였다. 

잘 짜여진 리듬을 연주하는 몸들의 향연, 편안한 연주를 들려주는 악기와 노래들이 어떤 이야기를 그려내는 동화 같은 공연이었다. 구체적인 서사가 있진 않았지만 느껴지기로는 분명 어떤 이야기 같았달까? 공간도 이야기를 하고 음악도 이야기를 했던 것 같다. 
여느 공연들처럼 녹녹도 관객들에게 말 걸기를 한다. 어릴 적 깜깜한 방에서 하던 그림자놀이로 말을 걸고, 간단한 룰을 가진 박수돌리기 놀이를 통해 직접 말을 걸기도 했다. 그들은 관객들의 집중과 흥미를 끌어내는 데 ‘익숙한 놀이’를 사용했다. 특히 그림자 놀이는 어릴 적 향수를 자극하길래 여기서 잠깐 입꼬리가 쓱~ 올라갔다. 어느 한 사람을 콕 찝어 집중시키는 방식의 관객참 여가 아니라 거기 모인 모든 관객들 전부를 상대로 하는 놀이였다. 그래서 모두가 거대한 한편이 되는 상쾌한 경험을 하기도 했다. 



런타임이 흐를수록 관객들과 녹녹은 적잖이 신나 보였다. 어른, 아이 관객들을 마중나온 녹녹의 이야기 속으로 기분 좋게 쓱~ 미끄러져 몰입하는 것이 퍽 보기 좋았다. 
이날 어떤 관객은 원더랜드로 빨려 들어가는 호기심 많은 앨리스 같기도. 


2. Let’s Play together! 
그들의 리듬과 상냥함, 상상력이 관객을 기분 좋게 맞아준다. 
그들은 개인의 역량을 조명하는 화려한 솔로보다 전체의 조화를 중시하는 팀플레이에 집중한다. 세로의 single shot보다 가로의 full shot을 선호하는 느낌이다. 그래서 그들의 공연은 높다랗지 않고 널따랗다. 뾰족하지 않고 뭉툭하다. 많은 것들을 긍정하는 느낌을 준다. 익숙한 것들의 낯선 결합이 주는 초현실적인 충격요법이 아니라 친숙한 것들을 섬세하게 들여다보고 나름의 방식으로 재현하면서 긍정의 에너지를 수놓은 느낌이랄까? 


3. 녹녹의 몸+짓 
그들은 악기로서의 ‘몸’을 집중적으로 다룬다. 
몸을 다루는 기술적 탐구가 그들에게 중요한 이유이다. 그러나 그에 앞서 더욱 중요한 것은 악기 가 될 몸을 바라보는 시선일 것이다. 그들은 몸의 고유함을 그대로 놓아두고 그러한 몸의 소리로 소통하려는 존중의 시선을 지향한다고 했다. 여기엔 그들의 공통된 경험인 ‘노리단’의 영향도 적지 않아 보인다. 노리단은 반복되는 소비문화의 굴레를 성찰하여 지속 가능한 생태주의적인 삷 의 태도를 고민하는 넌버벌 뮤직퍼포먼스 그룹이었다. 그러면서 고유한 몸의 개성과 다양성을 존중하였고 ‘몸벌레’라는 바디퍼커션을 만들어 공연하기도 했다. 그러나 노리단의 몸에 대한 담론을 잇는 녹녹의 바디퍼커션은 노리단 몸벌레 그 이상으로 업그레이드된 버전이라 하겠다. 

이번 공연에선 ‘악기로서의 몸’에 대한 생각을 소박하고 조화롭게 ‘주변’으로 좀 더 확장시켰다. Mother nature를 향해서 손을 뻗고 일상과 주변의 한 조각들을 극장의 부분 부분에 배치시켰다. 모나지 않은 조화의 취향을 공간 여기 저기에 한  웅쿰씩 놓아두었다. 한 켠에선 나폴나폴 나비가 날고, 한 켠에선 서랍 속에 숨겨둔 자장가가 스물스물 새어 나온다. 여기에 소박한 익살과 웃음의 양념을 쳐서 공연을 동화처럼 연출했다. 
서로 다른 몸들이 내는 조화로운 소리를 멋진 음악으로 직조하려고 부단히 노력하는 그들. 그 날실과 씨실로 엮어낸 몸+짓은 과하지 않고 소박하다. 무대도, 조명과 음량도 모두 과하지 않고 소박했다. (이 부분은 살짝 아쉬웠다.) 결국 산울림 극장에서 1시간여의 시간은 아늑했다 해야겠다. 모닥불 곁에 모인 사람들의 그림자가 벽에 부딪혀 일렁이고 녹녹이 들려주는 주변의 이야기를 경청하는 듯한 그런 아늑함. 

4. 녹녹의 보이는 음악 
섬세한 리듬의 씨실과 날실로 직조된 부드러운 천 위에 색조를 띠는 악기와 노래로 색을 칠했다. 어떤 음악은 그림처럼 이미지가 쫙~ 펼쳐지기도 하는데…. 지저귀는 새들이 유혹하는 초록의 숲이 오라고 손짓한다. 바삐 일하는 곤충들의 소리, 작은 동굴 속에서 물방울이 떨어지는 소리…. 마이크로 입자처럼 작은 소리들이 앞으로 쭉~ 당겨진다. 이윽고 노래를 즐기는 새가 독창을 하며 실컷 목소리를 뽐내면 화답하듯 주변의 꽃과 나비도 덩달아 신바람을 일으킨다. 작은 숲속의 축제를 마치고 상쾌하게 숲을 지나 오면 노을 질 무렵, 오후의 작은 해변이 나타난다. 평화롭게 비눗방울놀이를 하며 깔깔대는 아이들과 발을 구르며 노는 무리들은 저마다 신이 나 있다. 



그리고 머리부터 발끝까지 신나게 춤을 추며 그림을 완성한 손, 발, 무릎, 허벅지, 배, 가슴, 입, 뺨에 박수를! 


5. 에필로그 
적어도 나 어릴 적엔 돌 하나, 줄 하나, 몸 하나로 해 지는 줄 모르고 놀다가 “밥먹어라” 소리가 들려야 마지못해 귀가했다. 비석까기, 고무줄 놀이, 깡통차기, 쎄쎄쎄 등 마르지 않는 놀이의 샘을 장착한 놀이 천재적 호시절. 경계없이 순진하고 귀엽도록 단순하여 모든 것을 생물화하는 물활론적 사고가 진심으로 가능했던 그 시절의 감각들. 살아온 날이 쌓일수록 그 감각들은 통째로 희미해지는 예외 없는 수순을 누구나 밟기 때문일까? 요즘, 다섯 살 내 조카의 유아기가 눈부시게 찬란해 질투가 날 지경이다. 

공연이 끝나고 드는 생각…. 
''맨 몸으로 노는 법을 잠시 잊었던 어른들’을 위한 동화 같은 공연이었다.'